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프티 그로브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그는 불같은 강속구와 뛰어난 실력 뿐만 아니라 [[다혈질|불같은 성질머리]]로도 유명했다.[* 별명이 '''High Strung''' 이었다.] 성깔 하면 어디 가서 지지 않는 전설의 타자 [[테드 윌리엄스]]조차 학을 뗐다고 한다. 실책을 한 [[내야수]]는 매번 무서운 눈총을 샀으며, 득점지원 잘 안되거나 그로브가 지는 날이면 덕아웃과 라커룸은 그야말로 개발살이 났다고. 그럼에도 불구하고 '''열받아서 기물을 박살낼 때 절대 자신의 밥줄인 왼손만은 쓰지 않았다.''' 이는 이후 많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어 어린 선수들의 인성교육에서도 중요하게 일컬어진다.[* 물론 다른 손으로 쌈박질하고 때려부순다는 게 좋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. 하지만 [[윤석민(투수)|윤석민]]과 [[데빈 윌리엄스]]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투수는 죽었다 깨어나도 던지는 손으로 험한 짓 하면 안 된다.]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서는 이런 괴팍한 성격은 많이 누그러져 철이 들었다는 평을 들었고, 옛 스승 [[코니 맥]] 역시 "이제 투수가 되었다"[* 저 녀석 예전에는 던지는 것만(Throwing) 할 줄 알더니 이제야 투구를 할 줄(Pitching)도 아는구만.][* 물론 힘으로만 윽박지르던 젊은 시절의 모습을 고쳐 컨트롤로 맞춰잡는 습관을 들인 것에 대한 칭찬으로도 볼 수 있다. 이것도 이제 투수가 되었다는 말의 의미가 엇나가는 게 아니니깐...]면서 칭찬한 바 있다. * 그가 활동을 시작한 [[1920년대|20년대]]부터는 라이브볼 시대였고,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드볼 시대 투수들에 뒤지지 않는 성적을 기록한 그는 라이브볼 시대 최초의 에이스로 불리기에 충분하다. 그러나 괴팍한 성격으로 인한 언론과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, 말년의 급격한 몰락[*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거로 못 뛸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.], 당시 기자들의 인식 부족으로 그의 위업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 등의 요인으로 명예의 전당은 3번째 투표에서야 76.4%라는 턱걸이 득표율로 입성했다. 모자는 전성기를 보낸 애슬레틱스가 아닌 보스턴 모자를 쓰고 갔다. * 역대 최고 좌완의 계보를 잇는 투수들의 계보는 레프티 그로브의 은퇴 다음 해에 데뷔한 [[워렌 스판]], 스판의 마지막 해에 데뷔한 [[스티브 칼튼]], 칼튼의 마지막 해에 데뷔한 [[랜디 존슨]]으로 이어진다. 이후 이 계보는 랜디 존슨이 은퇴한 2009년에 각성하기 시작한 [[클레이튼 커쇼]]로 이어지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